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SECI 모델 (문단 편집) ==== [[과학]]의 암묵적 측면 ==== 여기서 폴라니는 [[과학철학]]에서 중요한 기여를 했다. '''언뜻 순수한 명시적 지식 그 자체로 보이는 과학적 발견들조차도 사실은 암묵적 지식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폴라니는 "모든 지식은 개인의 인간적 경험과 따로 떨어져 있지 않으며 분리될 수도 없다" 고 말하며, 그 인간적인 경험은 자기 내면에서 여러 요소들을 내적으로 통합시키는 암묵적 지식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이 점에서, 폴라니는 과학 [[연구]]에서 기초연구와 응용연구의 구분법이나 학문의 '순수성' 에 대한 집착을 경계했으며, 실제로 그는 기초연구를 경시하던 [[소련]] 관료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폴라니의 이론 속에서 과학적 지식이란 일차적으로 명시적 지식으로 소통되는 면이 분명히 있지만 '''한편으로는 암묵적 지식으로 소통되는 면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과학적 지식이 그 자체로 명시적 지식이라거나, 과학적 지식에 암묵적인 측면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때이다. 그는 과학적 지식을 객관적이고 명시화 가능한 것들로만 한정하려는 시도가 종국에는 모든 지식을 파괴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보았다. 그의 저작 《암묵적 영역》[* Polanyi, M. (1966). The tacit dimension. Routledge. (김정래 역, 암묵적 영역, 박영사.)] 에 등장하는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며 지독한 오류들의 원천"(p.49)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는 소위 '사회 구성주의' 따위에 경도되어서 과학의 주관성을 주장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폴라니의 이론을 두고 '[[앨런 소칼]] 선생의 [[팩트폭력]]으로 때려잡아야 할 [[반과학]]' 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폴라니를 크게 오해한 것이다. 폴라니가 과학적 지식을 '인간적' 이라고 표현할 때, 그것은 '자의적인', '엄밀하지 못한', '주관적인', '실증적이지 못한' 같은 의미가 아니라, '인간다운', '경험이 녹아 있는', '사람 냄새 나는', '우리의 삶과 관련이 있는' 등의 의미를 갖는다. 당장 폴라니 본인의 경력부터가 화학[[박사]] 출신이고, 이미 2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하여 [[노벨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명성을 얻은 바 있는 물리화학자였다. 그렇다면 '뼛속까지 [[이과]]였다가 갑작스레 [[문과]]로 전향한' 폴라니의 눈에 비친 암묵적인 과학적 지식은 무엇이었을까? 이것을 쉽게 말하면 '''[[과학자]]로서의 연구 경험의 노하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폴라니가 지적했던 몇 가지 중 하나는, '''연구주제의 설정 단계'''에서 암묵적 지식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과학 연구뿐만 아니라 뭇 사람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과정 전반에서, 무엇을 '풀어야 할 문제' 라고 규정하기 위해서는 암묵적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역설]]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폴라니는 이 지점에서 [[플라톤]]이 제시한 '''메논의 역설'''(Meno's paradox)을 소개한다. 이 역설의 핵심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은 아무 문제가 없고,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들은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다면, 우리는 무엇이 문제임을 어떻게 깨닫는가?" 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플라톤 본인은 "우리는 과거의 생애를 회상함으로써 이 역설을 해결한다" 고 답변을 내놓았지만, 폴라니의 해결책은 암묵적 지식에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우리는 이미 암묵적으로 알고 있지만, 단지 처음에는 주목하지도 않고 관심을 갖지도 않다가, 어느 순간 주의가 쏠리면서 그 문제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폴라니의 또 다른 중요한 강조점은, 과학이 과학답기 위한 중요한 요소로서 '''[[과학자사회]]의 [[동료평가]]'''를 강조했다는 데 있다. [[칼 포퍼]]와 [[토머스 쿤]]을 비롯하여 수많은 철학자들이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결정적 기준을 찾고자 하였는데, 폴라니는 이 주제에서 '과학함의 내적 경험' 을 제시한 것이다. 과학을 한다는 것은 과학자들이 과학을 수행하는 동안 내면에 누적되는 개인적인 부분들을 공유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과학계에서 종사한다는 경험은 엄밀한 명시적 용어로는 전달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과학은 무엇인가?" 에 대해 과학철학자들이 머리를 쥐어뜯다 나온 답변이 아니라, 현장에서 뛰던 과학자가 내놓은 답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적 지식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엄밀한 [[실험설계]]와 [[통계적 방법]] 및 각종 [[실험 도구]]도 물론 중요하지만, [[학술대회]] 다이닝 파티에서 낯선 코쟁이 학자에게 말을 거는 아시아인 대학원생의 용기 혹은 낯선 원고의 가치를 평가하는 [[저널]] 에디터의 눈썰미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과학함은 [[논문]]이라는 명시적 지식의 매체로도 소통되기도 하고, 논문의 게재 가능성이 높은 저널을 고르는 안목을 제자에게 전수하는 지도교수의 암묵적 지식으로도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인간적 측면을 과학의 과학다움에서 애써 배제하려 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에 대한 잘못된 이해인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